제2장

5년 후.

“오빠, 우리 아빠가 저 건물에 있는 거 확실해?” 유리가 망원경으로 맞은편의 웅장한 건물을 바라보며 오빠에게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하지. 내가 직접 들어가는 걸 봤는걸.” 시후는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엄마 핸드폰에서 사진 봤어. 엄마 마음 아프게 한 그 나쁜 아빠가 확실해.”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

“유리야, 나쁜 아빠가 엄마를 괴롭혔는데, 엄마 대신 복수하고 싶지 않아?”

“복수?”

“응. 나쁜 아빠가 다른 여자랑 있어서 엄마가 슬퍼했잖아. 우리가 엄마를 위해서 나쁜 아빠를 혼내 줘야 해.”

박시후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하얗고 작은 손으로 능숙하게 컴퓨터를 조작하던 박시후는 몇 분 뒤, 자신만만하게 엔터키를 눌렀다. 그 순간, 이씨 그룹 빌딩 전체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빙고! 성공!”

박유리는 오빠를 우러러보며 박시후를 향해 힘껏 박수를 쳤다. “와아, 오빠 진짜 대단하다. 진짜 멋져.”

“더 대단한 것도 있어. 잘 봐.”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면, 헤헤, 그럴 리가.

같은 시각.

이씨 그룹 회의실.

회의가 시작된 지 30분쯤 지났을까, 전등이 한번 깜빡이더니 사방이 캄캄해졌다.

이씨 그룹은 자체 전력 공급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이런 대규모 정전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 앉은 이들은 모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표들이었다. 설마 테러나 강도를 만난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모두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저마다 핸드폰 불빛을 켰다.

상석에 앉아 있던 이도준은 태연하게 손을 들어 뒤에 선 윤 실장을 향해 까딱했다.

윤 실장이 곧바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 이도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LCD 화면이 번쩍이며 요란하게 엉덩이를 흔드는 수퇘지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수퇘지의 머리 위에는… 이도준, 세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이도준의 미간이 꿈틀했다.

그러더니 만화 속 어린아이가 ‘이도준’이라는 이름이 붙은 돼지의 등에 올라타, 채찍으로 ‘이도준’의 엉덩이를 때리며 앳된 목소리로 외쳤다. “이도준 돼지, 이리엇, 이리엇, 이리엇! 이도준 돼지, 말 안 들으면 잡아서 먹어 버릴 거야!”

순식간에 회의장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이도준 옆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이경진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점점 커지는 눈으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의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실룩거렸다.

만화 속 아이는 계속해서 ‘이도준’ 돼지의 귀를 잡아당겼고, 화가 난 ‘이도준’ 돼지는 사방을 마구 들이받았다. 아이의 앳된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이도준 돼지, 이리엇, 이리엇! 이리엇, 이리엇! 말 안 들으면 이도준 돼지찜, 이도준 돼지 장조림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이럴 수가!

“풉….” 이경진은 정말이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인재가 이렇게 웃기는 짓을 한 거야, 하하하하!

이경진은 웃다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이도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고, 칠흑 같은 눈동자에는 차가운 서리가 겹겹이 서렸다.

아래에 앉은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책상 위로 깊숙이 고개를 파묻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웃음이… 최대한 작게 웃겠습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음 순간 모든 조명이 환하게 켜졌고,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미처 정리하지 못한 표정들이 조명 아래 고스란히 드러났다.

공기 중에 싸늘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윤 실장!” 이도준이 고개를 돌리자, 윤 실장이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도준의 얼굴이 먹물을 떨어뜨릴 듯 시꺼메졌다.

윤 실장의 입꼬리가 채 돌아가기도 전에, 사람을 꿰뚫는 듯한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그는 순식간에 혼비백산했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렇게 재밌나?”

위험 신호가 전해지자 모두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윤 실장은 벌벌 떨며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회의장 전체는 그 서늘하고 음산한 눈빛 아래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참 후.

이도준은 고개를 숙여 서류를 뒤적였다. 조각처럼 잘생긴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한 냉기가 가득했다. “뭘 꾸물거리고 있어? 내가 직접 가서 조사하라고 해야겠나?”

박시후는 작은 배를 부여잡고 몸을 뒤로 젖히며 웃었다.

엄마를 괴롭힌 대가가 어떤 건지 알려 주기 위해 이 못된 아빠를 살짝 혼내 준 것이다.

흥!

하지만 이곳에 오래 머물러선 안 된다.

“유리야, 가자.” 박시후는 이미 노트북을 챙겨 제 책가방에 넣었다.

유리도 장난감 망원경을 자기 작은 가방에 도로 넣었다.

박시후가 박유리의 손을 잡았다. 두 아이가 깡충깡충 뛰며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차 한 대가 그들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서며 길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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